때때로 혁신은 결핍에서 일어난다 - 개발자의 영화감상(무방비도시)
전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가까운 지인에게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자기도 좋아한다며 ‘뭐 그런 뻔한 사실을 묻냐’는 듯 반응하죠. 그러나 전 정말 정말 영화가 좋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고 너무 지쳐도 일주일에 한 두 편 꼭 영화를 챙겨봅니다. 장르도 가리지 않습니다. 고어물과 공포물의 경우 힘들지만 다른 장르는 모두 좋아합니다. 특히 사람 사는 세상과 인간의 감정에 대해 다룬 영화를 가장 사랑합니다. 영화는 제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해줍니다. 개발자가 된 이후에도 ‘프론트 엔드’라는 분야를 택한 것은 사람과 직접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영화에 대한 탐구와 감동을 꾸준히 경험하고 기록하려고 합니다.
무방비도시 (Roberto Rosellini - 1945)
고전 배우중에 제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는 잉그리드 버그만입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라는 이탈리아 감독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었죠.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장이라고 알고 있지만 처음에는 잉그리드의 남편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간 그의 영화를 봐야지하다가 이제서야 첫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로셀리니의 작품은 1945년작인 ‘무방비도시’였습니다.
고전은 살아남은 존재
저는 고전은 무조건 위대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또한 제가 경험한 대부분의 고전들은 완벽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보는 고전은 그저 ‘생존자’입니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휩쓸고 간 곳에, 나무 밑동을 끌어안고 겨우겨우 버텨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모습, 그게 제가 생각하는 고전입니다.
그럼 고전 역시 사라진 다른 작품들과 동일한 것일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겨우 겨우 견뎠어도, 살아남았습니다. 비록 보잘것 없는 나무 밑동이라도 잡고 버텨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중에 고작 0.5% 내외만 한 세기를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록 나무 밑동이지만, 대부분은 그마저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고전을 볼 때 각 작품이 가진 ‘밑동’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이번 ‘무방비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습니다(그럼에도 기대보다 훨씬 훌륭해서 놀랐습니다). 중후반으로 가면 우리가 익숙히 경험한 감상적인 전개와 조금은 뻔한 구조로 서사를 풀어갑니다. 당시의 관객에겐 혁신적인 이야기 풀이도 2020년대의 관객에겐 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밑동’은 다른 고전들과 비교해도 단단하고 뿌리가 깊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무방비 도시에서 발견한 몇 가지 흥미롭고 즐거운 요소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결핍으로 인한 혁신
‘무방비도시’는 네오 리얼리즘이라는 20세기 중반 대표적인 영화의 한 조류를 열었죠. 네오 리얼리즘 혹은 ‘네오-레알리스모’ 라고 불리는 이 형식은 2차 대전 기간 도중 코미디와 상류 사회의 환상을 보여주는 무솔리니 시절의 영화와 헐리웃 영화에 반감을 가진 이탈리아 감독들이 시작했습니다. 특히 당시 이탈리아 영화계는 예산이 부족해서 동시대의 영국과 미국에 비해 제작환경이 열악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제약이었지만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들은 추악한 현실을 직접 보여주고 영화적 효과(조명, 음악, 배우)를 최소화한 ‘현실주의’적 영화를 만들었죠.
무방비 도시는 네오 리얼리즘의 대표작입다. 때문에 이 형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들이 이 영화에는 넘쳐나죠. 극중에서 ‘피나’라는 한 여성은 약혼한 남성인 ‘프란치스코’가 나치에게 끌려가자 그를 향해 달려가다 총을 맞고 죽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재 나치 치하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로셀리니 감독은 이 장면을 사건 현장에서 구현했다고 했습니다. 전쟁 영화에서 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무방비도시’에선 거친 카메라의 움직임과 다큐멘터리 같은 연출(음악도 나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들리는 음악들 대부분이 나중에 추가된 것이라 하네요)그리고 실재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요소들의 결합으로 굉장한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지금 보더라도 힘이 느껴지는 연출입니다. 제겐 네오-리얼리즘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영원히 이 장면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앞서 서술한 장면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연출로 제게 충격을 줬다면 영화의 결말 부분은 이제는 많이 사라진 시네마의 흔적이 돋보였습니다. 2019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라는 말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죠. 그의 말에 100%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흘러가는 시간과 삶에 대한 일깨움’이라는 요소가 전통적 시네마에서 중요한 관점이고 보존 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죠. 그 관점에서 볼 때 ‘무방비도시’의 결말은 당시 이탈리아인들의 삶을 너무나 우아하게 풀어낸 장면입니다.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실패하는 신부가 사살되기 전에 그와 친밀했던 동네의 꼬마들은 그 처형 장소를 방문합니다. 가까이 가지 못하고 철조망 뒤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만약 그 때 소리를 지르거나 우는 감상적인 연출을 했다면 촌스러운 결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셀리니 감독은 함께 휘파람을 부는 아동의 모습을 넣는다. 말로 풀지 않았다. 억지로 감정을 우겨넣지도 않았죠. 그저 모두 함께 휘파람(극중에서 휘파람은 레지스탕스의 암구호의 역할을 함) 붐으로서 신부에 대한 ‘애도’, ‘연대의식’ 등을 녹여내고 있습니다. 소설, 연극, 음악은 보여주지 못하는 영화만이 가능한 감동의 영역이었습니다. 신부는 쓰러지지만 함께 도시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결말의 장면은 비극적 결말임에도 ‘연대’를 열어주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전후 이탈리아의 모습들
영화 연출이나 미학적 아름다움을 제외하고도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영화입니다. 특히 50년 정도 지난 영화들의 경우는 단순히 영화 작품을 넘어서 ‘역사적’ 기록물로서 가치도 굉장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전후 혹은 2차 대전 기간의 이탈리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네오-리얼리즘’답게 사실적으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우리의 인식 속 이탈리아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입니다.
가장 강렬했던 장면들은 대부분 가난을 묘사한 씬입니다. 빵을 사고 싶어도 빵집에 빵이 없는 모습, 4시에 끓인 식은 양배추죽을 저녁으로 먹는 모습, 훔쳐갈까봐 실내에 걸려있는 자전거의 모습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궁핍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난 속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에스프레소 한 잔은 꼭 대접하겠다는 ‘피나’의 모습은 그들의 커피 문화가 얼마나 오래 그리고 끈끈하게 형성되었는지 보여줍니다. 또한 아이들이 거칠게 축구하는 모습에서 지금도 악명 높은 그들의 축구 문화 역시 뿌리 깊은 역사를 가졌다는 것도 재미있었죠. 방 한 구석에서 배시시 웃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남유럽 특유의 대가족 문화가 보여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했고,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모습은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죽은 어머니를 안고 슬퍼하는 ‘마르첼로’와 그를 보듬어주는 ‘프란치스코’의 모습에서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보여지는 가족의 가까운 관계가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은 ‘종교’ 였습니다. ‘무방비도시’ 속 종교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신을 믿는 것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신부는 아이들이 축구할 때 심판을 봐 주고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마치 친구이면서 보호자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모습이었죠. 또한 레지스탕스, 사회주의자 등 핍박받는 새력의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쟁과 독재로 괴로움을 겪는 서민들의 고해성사까지 들어주는 최후의 안전망 같은 역할까지 합니다. 지금보다 당시의 종교가 이탈리아 인들에게 훨씬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결말 장면에서 이탈리아 군인들은 차마 신부를 쏘지 못합니다. 결국 독일인의 손에 죽는 신부의 모습에서, 종교라는 최후의 안식처마저 짖밟은 독일인에 대한 분노를 잠깐이나마 느껴볼 수 있기도 하죠.
개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개발자의 시선에서 흥미롭게 보였던 부분은 결핍에 대응하는 자세였습니다. ‘네오 리얼리즘’뿐 아니라 다양한 혁신은 ‘부족함’이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가끔 경험하기도 하죠. 물론 제가 가진 결핍은 절대적인 지적 결핍입니다. 프론트 엔드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겪는 초보적인 수준의 ‘부족함’이죠. 그러나 이러한 결핍들도 때때로 창의성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부트캠프의 1차 프로젝트에서 CSS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던 저에게 transition 효과로 인한 다양한 오류들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정석적으로 모든 것을 알았다면 해결할 문제였지만, 대신 평이한 결과물이 나왔을 겁니다. 대신 저는 어떻게든 오류를 감추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 결과 더 큰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재미있는 모션 효과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그때의 감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크게 보면 기본 실력이 부족한 것이 분명합니다. 공부해서 채워나가야 하는 것은 백번 맞죠. 그럼에도 ‘임기응변’, 내게 주어진 상황에 맞는 ‘대응’의 자세 역시도 꼭 기억하려고 합니다. 때때로 가장 재미있고 창의적인 결과물은 이러한 ‘임기응변’에서 등장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