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 개발자의 영화감상(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전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가까운 지인에게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자기도 좋아한다며 ‘뭐 그런 뻔한 사실을 묻냐’는 듯 반응하죠. 그러나 전 정말 정말 영화가 좋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고 너무 지쳐도 일주일에 한 두 편 꼭 영화를 챙겨봅니다. 장르도 가리지 않습니다. 고어물과 공포물의 경우 힘들지만 다른 장르는 모두 좋아합니다. 특히 사람 사는 세상과 인간의 감정에 대해 다룬 영화를 가장 사랑합니다. 영화는 제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해줍니다. 개발자가 된 이후에도 ‘프론트 엔드’라는 분야를 택한 것은 사람과 직접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영화에 대한 탐구와 감동을 꾸준히 경험하고 기록하려고 합니다.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Nora Twomey, 2017)
개발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제가 처음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제 스스로 개발자라고 불리고 싶게 만들었던 문장입니다. 개발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 짧은 문장이지만 개발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와 개발 과정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를 모두 함축하고 있습니다. IT 혁신 기업들이 주식 시장을 지배하고 개발자의 연봉이 올라간다는 뉴스를 볼 일이 많았졌습니다. 그 혜택을 받는 개발자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주가와 연봉은 ‘개발자’의 모든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본질’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개발자는 단지 고액 연봉을 받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개발자는 항상 현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존재였습니다. 독일군의 ‘에니그마’를 해독했던 ‘튜링’부터 세상 모든 사람과 소통 할 수 있게 해준 ‘Facebook’까지 개발은 현실의 장애물을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개발자로서 훌륭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에 1차적인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훌륭한 개발자의 임무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솔루션’이 필요한 곳이 어딘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장소를 파악하는 일도 꼭 필요합니다. 이 점에서 영화는 제게 늘 도움을 줍니다.
오늘 본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이라는 영화는 카불이 탈레반에게 점령당한 시기 겪었던 당시 카불 시민들의 이야기입니다. 비극적이게도 이 일은 지금 현실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2021년 미군이 순차적으로 병력을 감축했고, 9월 11일부로 아프간에서 철수를 발표합니다. 그러자 8월 탈레반은 지방을 넘어서 수도 카불까지 진격했고 정권을 와해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대통령은 돈을 들고 도망갔습니다. 남겨진 카불 시민들은 탈출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군용 비행기 다리에 매달리다 추락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전 세계에 정신적인 충격을 주기 충분했습니다. 전 그곳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 영화를 보았고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힘이 새다
주인공은 ‘파르바나’라는 어린 아이입니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기반으로 여성을 대우하는 탈레반으로 인해 ‘파르바나’는 홀로 밖을 돌아다니지도 못합니다. 여성에겐 판매도 허가되지 않습니다. 여성과 그에 대한 탄압이 주를 이루지만 단순한 ‘페미니즘’ 영화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아프간 여성들에게 세상은 그 자체가 위험입니다. 혼자 다니면 일면식도 없는 남성이 폭행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집에 남자가 없으면 식료품을 사는 것 같은 모든 행위가 제약됩니다. 단순히 여성의 탄압받는 인권을 넘어 기본적인 생존이 위협받는 문제로 확장됩니다.
자 이제 현실의 문제가 던져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엄혹한 현실이 이 영화의 문제상황입니다. 저는 여기서 ‘영화’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가정하고 어떤 해결책이 제시되는지 살펴봤습니다(물론 해결책 없이 문제를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영화들이 많지만). 파르바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그녀의 해결책은 ‘이야기’였죠. 파르바나는 처음에는 이야기를 하기 싫어합니다.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러나 아버지가 사라지고 가족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파르바나’는 이야기를 통해 힘을 얻고 문제를 해쳐나갑니다.
영화속에서 그녀는 다양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영광과 고통을 간직한 역사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죽은 오빠 ‘술레이만’의 이야기를 설화처럼 풀어주기도 합니다. 공통적인 것은 이야기가 고통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죠.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 많은 제국들에게 침략당했고, 술레이만도 어린 시절 ‘장난감 지뢰’를 만져 죽습니다. 영화는 그녀가 아픈 기억을 ‘이야기’로 녹여내면서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아무리 아픈 상처도 이야기로 담아내면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비단 ‘파르바나’ 개인에 국한되지 않죠. 현재 문제를 겪는 모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감독은 그 처참한 현실 역시 ‘영화’라는 이야기 속에 담아내 극복하고자 합니다. 물론 영화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영화에 담긴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는 세상으로 전해집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에겐 더 이상 그들이 남이 아닙니다. ‘그들’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로 치환되는 과정이 이야기 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된 이상 해결책은 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슬람’, ‘중동’, ‘테러집단’, ‘난민’ 이라는 이름으로 타자화되면 해결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남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만으로 더 이상은 함부로 모른 척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이야기의 힘이죠. 그래서 옛부터 권력은 이야기의 힘을 두려워했습니다. 책을 불태우고, 이야기꾼들을 살해했죠. 영화 안에서도 탈레반은 ‘파르바나’의 아버지가 ‘이상한’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둡니다. 그만큼 이야기의 힘은 강합니다.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야기’의 가치와 그것이 가져오는 연대의식이죠.
누군가는 그곳에 남아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개봉한 ‘모가디슈’라는 영화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소말리아 내전 중 탈출을 그린 ‘모가디슈’에서는 급박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존재하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탈출’이죠. 소말리아는 ‘타지’이고 소말리아인들은 ‘타인’이기 때문에 우리 한국인은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가는 해결책이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뚜렷한 해결책은 드물죠. 대부분 둘 다 모호하고 해결이 될지 불확실한 선택이 많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 그렇죠.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아프간 사람들은 그곳을 탈출 할 수 없습니다. 물론 탈출을 위한 여유나, 필히 탈출해야 하는 경우 감행하지만 대다수는 그곳이 삶의 터전입니다. 물건을 파는 아이 뒤로 새겨진 총탄 자국과 앉아 쉬고 싶어도 지뢰가 있을지 몰라 쉬지 못하는 모습은 망가진 그들의 터전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세상이 순식간에 위험 요소로 덮히고, 남장을 하는 순간 자유로워지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입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해결책으로 제시했습니다. 서서히 스며드는 이야기가 점차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의 문제가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 해결책이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해결이라는 것이 꼭 ‘모가디슈’처럼 뚜렷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발을 해 나가며 기능 구현을 하는 과정은 다양한 문제들과 마주하는 경험의 집합입니다. 모든 위기가 ‘모가디슈’처럼 뚜렷한 해결책을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파르바나’와 아프가니스탄의 문제처럼 어디서 부터 해결해야 할지, 아니 문제 자체부터 정의가 어려운 일도 자주 마주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는 문제 상황을 정리하는 수단이 꼭 직접적인 해결책만 있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가끔은 간접적이고 시간이 더 걸리는 방법이라도 직접적인 것보다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할 영화였죠.
우리는 사람이 가장 큰 보물인 땅이다. 우리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제국들 사이에 있다. 우리는 힌두쿠시산맥 기슭 안 균열된 땅이다. 북부 사막의 이글거리는 태양에 그슬린 땅. 얼음 산봉우리와 대조되는 검은 돌무더기의 땅. 우리는 오리아나. 고귀한 이들의 땅. ‘목소리가 아닌 말의 가치를 높여라. 꽃을 피우는 것은 비다. 천둥이 아니다. ‘
영화의 마지막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설화적 대사와 함께 마무리됩니다. 지리적으로 척박해 ‘사람이 보물인 땅’,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제국 사이’ 등 익숙하게 ‘한민족’을 서술하던 문장과 비슷합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이죠. 이야기는 이렇게 퍼져나갑니다. 이야기는 듣는 순간 그 대상과 연결됩니다. 연결된 대상과의 관계는 그 전과 전혀 다르죠. 파르바나의 이야기를 들는 모든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을 그 전과 다르게 바라보게 될 겁니다.